언제였더라?
가장 크게 울었던 기억?
영화보면서?
그럼 무슨 영화일까?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나의 자존심이 무너지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
누군가로부터 떠날 때?
그래... 최근 서너달 사이에 가장 내 눈이 뜨거웠던 순간은 누군가로부터 떠나오면서였을 것이다.
이별. 못 보는 이별은 아니지만, 쉽게 보기는 어려운 이별.
적절한 Give and take가 존재해야 유지되는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난 왜 그들의 마음도 내 마음 같을 것이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왜? 나만 아파할까...
나만 상쳐받고...
나만 아파하고...
나만 울고...
또 나만이 아물어간다.
그렇다고 그 상처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런 믿음을 버리기는 싫다.
적어도 이 세상에 나같은 바보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울었다.' 라고 말하면 무언가 이상한 눈빛이 앞서는 세상.
말로는 감성이 중요하고, EQ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교육과 사회적 통념은 "남자는 살아가면서 세 번 운다."라는 되도 않는 개소리를 세뇌시키는 것은 뭐란 말인가?
남자가 울면 왜? 뭐가 이상해?
남자도 사람인데, 여자도 사람이고, 그럼 다 같이 우는거야. 울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가진 특권이니까.
운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그리고 언제 울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감정이 말라가는 것은 Humanism의 실종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이 사라져간다는 반증일 것이다.
울고 싶으면 우는거다. 소리내어 울 필요는 없다.
마음이 울면 마음으로 울고, 눈이 울면 눈으로 울고, 소리내어 울고 싶다면 소리내어 울면 된다.
자신의 기만하지 말고, 자신이 강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세뇌하지 말자.
'난 약하다.' 아니, '사람은 약하다' 그러니까, 떼로 모여 사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주고 받으려는 일련의 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이겠지.
약함을 인정할 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강하다고 뻣뻣하게 버티는 것은 잠시일 뿐이다. 그리고 그 뻣뻣함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임을 많이 봐왔다. 내 마음이 하는 얘기를 듣자.
내 마음이 나의 머리에게 하는 얘기를...
'난 오늘 울고 싶어'라고 마음이 말한다면 울어주자. 울고나면 마음도 몸도 그리고 복잡했던 머리도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테니까.


